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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AS] 응급실 우선순위, 접수 순서가 아닌 의학적 등급

by HeukHo 2026. 2. 27.

안녕하세요. 대학병원 응급실(ER) 현장에서 생사의 최전선을 지켰던 전직 응급구조사입니다. 응급실을 떠난 지금, 그때의 치열했던 기억과 경험을 살려 위급한 순간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무결한 응급의학 정보를 공유합니다. 응급실에 방문했을 때 환자와 보호자들이 가장 많이 오해하고 분통을 터뜨리는 것이 바로 '진료 순서'입니다. 많은 분이 "내가 먼저 접수하고 1시간을 기다렸는데, 저 사람은 왜 오자마자 처치실로 들어가나요?"라며 거세게 항의하곤 합니다. 보호자 입장에서는 충분히 야속하고 억울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응급실은 아픈 순서대로 진료받는 '선착순' 공간이 아닙니다. 오직 '생존 확률'과 '처치의 시급성'에 따라 움직이는 철저한 통제의 공간입니다. 오늘은 그 과학적이고 공정한 기준이자 국가 표준인 KTAS(한국형 응급환자 분류도구)의 비밀을 현직자의 시선으로 명확히 설명해 드립니다.

KTAS의 정의와 5단계 분류 시스템의 과학적 원리

우리나라 모든 응급의료기관은 보건복지부 지침에 따라 환자가 내원하는 즉시 KTAS(Korea Triage and Acuity Scale)라는 표준화된 분류 도구를 사용하여 중증도를 분류합니다. 이는 간호사나 응급구조사 등 전문 교육을 이수한 의료진이 환자의 초기 활력징후인 혈압, 맥박, 호흡, 체온뿐만 아니라 통증의 양상, 의식 상태, 기저질환, 외상의 기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응급도를 1단계부터 5단계로 구분하는 정밀한 시스템입니다. 이 분류는 의료진의 주관적인 감정이나 환자의 목소리 크기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캐나다의 CTAS를 한국 실정에 맞게 개정한 의학적 표준 데이터에 근거합니다. 상세 등급을 살펴보면, 1단계는 심정지나 호흡정지처럼 즉각적인 소생술이 필요한 상태를 말하며, 2단계는 심근경색, 뇌졸중, 중증 외상처럼 15분 이내에 처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거나 심각한 장애가 남을 수 있는 매우 긴급한 상태입니다. 3단계는 긴급 상황으로 30분에서 1시간 내 처치가 필요한 중등도 질환이며, 4단계와 5단계는 단순 감기, 찰과상, 장기화된 통증 등 비응급 상황으로 분류됩니다. 응급실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1~2단계 환자가 단 한 명이라도 발생하면 의료진 전원이 그 환자에게 투입되어야 하며, 이 과정에서 낮은 단계 환자들의 대기 시간은 기하급수적으로 길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한정된 자원 속에서 단 한 명의 생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가장 시급한 곳에 의료력을 집중하는 응급의료체계의 대전제이자 정의로운 배분임을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

중증도 분류가 진료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의학적 이유

현장에서 제가 트리아지(중증도 분류) 업무를 수행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했던 점은 환자가 호소하는 주관적인 고통의 정도보다 객관적인 활력징후(V/S)의 안정성잠재적 위험도였습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더 많이 아파하는 사람을 먼저 봐줘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의학적 판단은 다릅니다. 예를 들어, 발가락이 골절되어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며 비명을 지르는 환자는 KTAS 4단계 혹은 3단계 하위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통증은 심하지만 당장 생명을 잃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반면, 늦게 왔더라도 식은땀을 흘리며 가슴이 답답하다고 조용히 말하는 환자는 즉시 2단계로 분류되어 먼저 진료실로 입장합니다. 그 가슴 답답함은 심장마비의 전조증상일 수 있으며, 단 몇 분의 지체가 사망으로 직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뇌졸중 골든타임 내에 내원한 환자는 겉보기에 멀쩡히 걸어 들어오더라도 뇌세포 사멸을 막기 위해 모든 절차를 생략하고 최우선 순위를 갖게 됩니다. KTAS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고통을 측정하는 도구가 아니라, '지금 처치하지 않았을 때 이 환자가 사망하거나 영구적인 신체 마비가 올 가능성'을 냉정하게 수치화하는 도구입니다. 따라서 대기 순서가 계속 밀린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여러분의 현재 상태가 당장 생명을 위협받거나 중대한 신체적 손상을 입을 정도의 초응급 상황은 아니라는 의학적 안심의 신호이기도 합니다. 의료진은 단순히 접수 번호를 순서대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대기실 환자들의 상태를 모니터링하며 가장 급한 불부터 끄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치열한 계산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효율적인 응급실 이용을 위한 환자의 올바른 협조 사항

응급실을 방문했을 때 환자 본인의 증상을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전달하는 행위는 본인에게 적합한 KTAS 등급을 부여받기 위한 가장 중요한 첫 단추입니다. 간혹 진료를 빨리 받기 위해 증상을 과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오히려 불필요한 검사를 유발하거나 정말 급한 환자의 기회를 뺏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의료진에게 증상을 설명할 때는 "아파서 죽겠다"는 표현보다는 "몇 시 몇 분부터, 어느 부위가, 칼로 찌르는 듯 혹은 묵직하게 아프고, 구토나 어지러움이 동반된다"는 식으로 상세히 말씀하셔야 합니다. 특히 평소 앓고 있는 고혈압, 당뇨, 심장 질환 등의 기저질환이나 현재 복용 중인 약물(특히 아스피린, 와파린 같은 항응고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중증도 판정의 결정적인 근거가 됩니다. 또한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도중에 통증이 갑자기 심해지거나, 식은땀이 나고 숨이 가빠지는 등 처음 접수할 때와 다른 변화가 느껴진다면 지체 없이 분류 구역의 간호사나 응급구조사에게 알려야 합니다. 환자의 상태 변화에 따라 KTAS 단계는 언제든 재조정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응급실에서의 기다림은 누구에게나 고통스럽고 불안한 시간이라는 것을 현장의 의료진도 충분히 공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기다림 덕분에 옆 처치실의 누군가는 죽음의 사선에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우리 사회의 응급의료 체계를 신뢰하고 협조해 주시는 성숙한 시민 의식은 현장 의료진에게 가장 큰 힘이 되며, 이는 결국 대한민국 전체의 의료 질 향상과 소중한 생명을 살리는 결과로 이어지게 됩니다.


💡 [참고 문헌 / References]

  1. 보건복지부 고시 제2015-241호, 한국형 응급환자 분류도구(KTAS).
  2. 대한응급의학회(KSEM) 응급의료체계 운영 가이드라인.
  3.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31조의 2 (응급환자의 중증도 분류 및 진료).
  4. Tintinalli's Emergency Medicine: A Comprehensive Study Guide, 9th E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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